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키릴 문자 (문단 편집) === 불가리아 제1제국, 키릴 문자 === 키릴로스 형제 이후 [[불가리아 제1제국]]에서 교회 슬라브어(고전 [[불가리아어]])를 표기하기 위해 그리스 문자와 상기한 글라골 문자를 참고하여 새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클리멘트 문자(Климєнтовица)로도 불리는 초기 키릴 문자이다. 초기 키릴 문자는 불가리아 제국 출신으로 [[오흐리드]]에서 활동한 클리멘트(Климєнтъ Охрїдьскꙑи)와 나움(Наоумъ Охрїдьскꙑи)[* 둘 다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의 오랜 제자로 모라비아 사역에 같이 종사하였다. 메토디오스 사후 독일 [[수도자]]들의 견제로 모라비아에서 추방당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관할이었던 불가리아 제1제국에서 활동하였다.]에 의해 창제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키릴로스가 만든 글라골 문자가 이후 키릴 문자로 변형된 게 아니라 키릴 문자 자체가 키릴로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다.[* 동시대 교황 [[요한 8세]]가 메토디오스에 보낸 서한(Industriae tuae, 880년)으로 미루어 보면 메토디오스 생전부터 글자의 발명가는 '철학자' 콘스탄티노스(키릴로스의 본명)라는 인식이 팽배했음을 알 수 있다. 키릴로스는 모라비아 사역 초기인 869년에 사망하여 글자의 본격적인 활용, 교육 및 전파는 메토디오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클레멘트와 나움은 두 형제에게 글자를 배운 수제자들로서 문자의 외형을 그리스 문자에 더욱 가깝게 개량한 위인으로 평가받는다.] [[불가리아]]에선 키릴로스를 자국 [[위인]]으로 여기면서 키릴 문자를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같은 주장을 하는 [[그리스]]와 말다툼을 한다. 일단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는 테살로니카 출신이다. [[미하일 3세]]가 테살로니카인이라 언급하며 찬사를 하기도 했고, 키릴로스의 본명도 중세 그리스어식인 콘스탄티노스(Κωνσταντίνος)였다. 따라서 정체성 면에서는 동로마인인 것이 명백하다. 한편 어머니가 슬라브계 여성이었다는 주장도 있고, 실제로 당시 테살로니카에는 슬라브인들이 많이 살기도 했기에 인종적으로는 그리스-슬라브 혼혈 동로마인이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키릴로스 형제의 작업에 쓰인 교회 슬라브어도 테살로니카에 거주하던 슬라브계 주민들의 언어를 기반으로 했다. 따라서 현재의 민족적 기준으로 보자면 그리스인 또는 불가리아인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모두 있는 셈이다. 후에 [[대 모라비아]]의 영역(체코, 슬로바키아 등)이었던 곳은 키릴 문자를 폐지하고 라틴 문자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오늘날의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는 라틴 문자를 쓴다. 그리고 역시 글라골 문자가 쓰였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도 라틴 문자를 쓰고 [[몬테네그로]]에서는 라틴 문자와 키릴 문자 둘 다 쓰는데, 독립 후 라틴 문자 사용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라비아에서 동쪽으로 전해진 키릴 문자를 받아들인 러시아는 계속 그것을 고수하여 거의 종가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러시아]], [[동유럽]] 일대, [[남유럽]]의 [[발칸 반도]] 중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몽골]] 등지에서 사용한다. [[러시아]]가 포함하는 많은 [[소수민족]]들이 [[소련]] 시절 자신의 문자를 정할 때 이 키릴 문자를 도입했다. 중국에서 탄압을 피해 중앙아시아로 도피한 [[무슬림]]들의 후예인 [[둥간족]]의 언어인 [[둥간어]]는 [[중국어]]에서 갈라져 나온 방언이지만, 문자는 소련 시절 도입된 키릴 문자를 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